원작 소설이 아닌 1981년 방영된 BBC Granada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찰스 라이더가 옥스포드에서 귀족 작위를 가진 세바스찬 플라이트를 만나면서 플라이트 가문과 인연을 갖고 그들을 지켜보며 또 그들과 함께 겪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긴 시간에 걸친 이야기는 전부 인간이 종교를 대하는 태도를 다양하게 그리고 있다. 그 종교는 카톨릭으로, 아직도 세계적으로 큰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성공회를 받아들인 영국에서는 상당히 고립된 종교이며, 그런 만큼 더욱 엄격한 보수성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완고성과 엄숙성의 상징으로 삼고있는게 아닌가 싶다. (굳이 그게 아니라도 애당초 그 종교의 세계관 자체부터가...)


먼저 플라이트 가문의 사람들을 보자. 마치메인 부인(세바스찬의 어머니), 장남 브라이디와 막내딸 코딜리아는 매우 신실한 종교인들이다. 그러나 차남 세바스찬과 장녀 줄리아는 이미 성장과정에서 종교에 대해 다소 '이단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관련 인물들과 긴장을 겪는 과정에서 결국 탈선하여 방황을 겪게 된다. 세바스찬의 경우 지배적이었던 어머니의 강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 크고, 또 그의 경우 종교로부터 벗어났다기보다는 알콜에 중독되어 사회망으로부터 벗어났다. 종교를 겨냥한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부인은 없었다. 다만 그가 벗어나고 싶어 했던 주변의 인물들이 깊이 카톨릭에 심취된 인물들이었을 뿐. 반면 줄리아의 경우에는 (최소한 드라마에서 그려지기로는) 카톨릭은 그녀가 맞닥뜨린 심연에서 그녀를 구해줄 수 없었을 뿐더러 그녀에게는 매우 중요했던 순간에 답을 구하고자 했던 고민을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했다는 반발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줄리아의 경우 (비록 즉흥적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지만) 신실하게 종교를 믿어왔던 가족들 앞에서 자신은 종교를 진심으로 믿어온 적이 없다고 외치며 신앙을 부정하고, 카톨릭에서 금하고 있는 이혼한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해 결국 신교 교회에서 가족들에게 외면받는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코딜리아를 통해 전해져오는 소식에 따르면 세바스찬은 수도원에 정착해, 가족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실한 삶을 살게 되고, 줄리아는 보다 극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그 자신이 종교를 진정 부정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가하면, 마치메인 후작은 처음에는 카톨릭을 믿었던 여자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위해 개종하게 되지만 이후 결혼에 불행을 느껴 그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술에 빠지고 종래에는 가족을 등진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영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정부 카라와 함께 베니스에 머무는 것이다. 물론 이 기간에는 종교에 대해서도 학을 떼며, 죽음을 예감하고 브라이즈헤드에 돌아오고 나서도 구원을 위한 성례를 위해 자식들이 부른 신부를 거절한다. 오랫동안 그 교회를 거부해왔다고 말하며. 그러나 마지막 순간 의식이 희미해진 순간에 그는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짜내어 성호를 긋고, 찰스는 이 순간에 그토록 부정하던 종교로부터 다소 감화를 받게 됨을 인정한다.(마지막 장면에서도 그는 신의 작용이 not in vain하다고 고백하긴 하지만)


그러나 이야기 내에서 줄곧 찰스는 종교를 전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의 경우 아버지부터가 신앙적인 인물이 아니고 신앙적인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머니는 그가 너무 어렸을 때 죽었다. 찰스는 종교적인 어머니에 의해 가장 친한 친구인 세바스찬이 고통받는 것을 보았고 또한 그의 여동생 줄리아가 마찬가지로 종교에 의해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 둘의 고통이 찰스를 그토록 종교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야기 속에서 내내 극도로 개입을 꺼리고 심지어 자신의 결혼생활에서 조차 한발짝 물러나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오직 종교에 대한 문제에서만은 일관적으로 강력하게 의견을 개진하는데 종교는 허례허식일 뿐 아무런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던 줄리아에게 사랑을 느껴 결국 아내인 실비아와 이혼까지하고 그녀와 다시 결혼하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 마치메인 후작의 임종을 둘러싸고 마지막 순간에 신부를 들여 구원성례(카톨릭 신자가 아니라서 적합한 용어를 모르겠다)를 드리게 하려고 노력하는 브라이디와 코딜리아와 맞서 종교의 무용론을 주장하다가 줄리아와의 사이가 틀어져 이는 결국 성사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했듯 마지막에 평생에 걸쳐 종교를 부정하던 마치메인 후작이 죽기 직전 종교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종교에 형식을 넘어서 사람의 마음을 위안하는 것이 있음을 생생히 느끼게 된다. 이야기의 매우 마지막 부분과 합쳐 보면 즉 그는 조금 동떨어져서 삶의 허무성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나마 신의 섭리를 깨닫고 인정하는 인물인 셈이다.


반면 처음부터 끝까지 종교를 믿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 않으며, 무신론자라고조차 말하기 힘들 정도로 종교에 대해 전혀 아무 관념을 갖지 않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한 때 줄리아와 결혼하는 남자 렉스 모트럼 되시겠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 인물은 주변의 다른 등장 인물들과 굉장히 반대되는 세속과 탐욕의 표상이다. 그는 줄리아의 외모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집안이 가진 신분과 종교의 권위를 획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줄리아에게 접근해 결혼을 약속하게 되는데, 이 때 카톨릭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개종하겠다고 선언한다. 마치메인 부인은 신실한 만큼 형식적으로 종교를 믿는 것은 진실로 믿는게 아니라고 생각해, 그에게 신뢰하는 신부를 소개시켜주지만, 신부조차 그가 진심으로 종교를 이해하게 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결혼식 직전에야 마지못해 그를 카톨릭 신자로 인정한다. 그러나 브라이디는 그가 과거 캐나다에서 결혼한 사실이 있음을 알아내고 가족들 앞에서 그것을 폭로하여 줄리아와의 파혼을 요구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줄리아가 종교를 내치면서 혼인에는 성공한다.


일련의 내용들은 나름 신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무신론자의 길을 걷는 나에게 상당히 복잡한 기분을 안겨준다. 나도 종교의 영향으로부터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같은 무신론자라도 태어나서부터 무교라서 무신론자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종교관을 가지고 있겠지. 아마 이런 것들은 무형이기 때문에 오히려 눈에 보이는 풍경, 건물따위의 것들 보다도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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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소설인 이 작품은 영국에서는 꽤 사랑받고 있는지, 1981년의 드라마가 성공한 이후(2011년에는 30주년 블루레이가 출시되었다.) 2008년에 영화로도 리메이크 되었다. 11화, 매 회당 1시간에 육박하는 길이를 가지고 있는 드라마를 두 시간 남짓의 영화로 만드는게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2008년 판 영화는 같은 제목을 달고 발표되기에는 왜곡 수준이다. 일단 두 캐릭터의 성격부터 관계해석, 저변에 흐르는 종교에 대한 각자의 태도, (아마도 소설의 정체성을 구성하리라 짐작하는) 귀족적 분위기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잡아내고 있지 않다. 다만 언제나 짠내나는 벤 위쇼와, 의외의 미남자 매튜 구드만을 건질 수 있을 뿐이다. (출연진은 그 외에도 훌륭함)


일단 영화가 그 긴 이야기 중에서 세바스찬과 찰스의 관계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건 알겠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세바스찬은 찰스에게 추파를 끊임없이 날리고, 찰스가 자신을 배반해 줄리아를 선택한 것에 상처를 받아 집을 뛰쳐나가는데 이건 뭐 하는 막장 할리퀸 로맨스인지... 알고보니 와인 테이스팅을 하던 저녁의 키스도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라고 한다. 반면 드라마에서는 세바스찬과 찰스의 관계에서 먼저 밀어내는 쪽은 세바스찬이라 보아야 옳다. 그는 찰스가 가족들과 너무 가까워져 자신을 적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혹은 단순히 자신보다 가족들을 더 잘 이해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찰스를 밀어내며 가족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술에 빠지고 종래에는 자발적으로 종적을 감추어 영국을 떠나고 만다. 영화는 찰스의 브라이즈헤드에 대한 집착을 건축물에 대한 것으로 초점을 맞추어 놓지만 드라마에서는 플라이어 가문의 사람들과 같이 보낸 시간만이 찰스를 사로잡고 있을 뿐이다. 인물들의 성격도 영화에서는 보다 극단적인데, 그저 숨겨진 성격이 확대되어 드러난 것이 아니라 없던 요소를 끼워넣어 원작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말았다. 세바스찬 플라이트의 경우 영화에서는 생활감이라고는 전혀 없고 섬세하지만 감정을 숨기지 못하여 자기 외에 주변일에는 신경쓰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는 형인 브라이디와 집안일을 논하기도 하며 심지어 알콜중독인 상태에서도 주변 인물들을 매료시키고 주변 상황을 계산하고 그에 맞춰 감정을 드러내거나 감추기도 하는 청년상 중 하나일 뿐이다. 찰스 역시 영화에서는 엄청난 행동력을 보여주고 마치메인 부인에게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줄리아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관조적이고 어떤 의미로는 수동적인 인물인데다 줄리아에 대한 감정노선도 미묘하다. 이 외에도 말하려면 구구절절이지만.


이블린 워의 원작 소설을 읽고 싶은데 우리나라에서는 1983년 단 한 번 번역본이 나온 이후로 절판되어 현재 구할 수 있는 책은 원서 밖에 없다. 참고로 그 번역본의 제목은 <옥스포드의 떠돌이들>. 몇몇 대학 도서관에 있는듯 하다. 80년대 문체의 번역이 지금 시대의 언어와는 상당히 달라서 읽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다.


드라마의 경우 젊은 시절의 제레미 아이언스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그의 팬에게는 장점이 되겠지만, 파릇파릇한 청년기를 연기해야 할 사람들이 낮은 화질로도 눈 밑에 그늘이 진게 역력해서 조금 아쉬웠다. 무슨 짓을 하고 다녀도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놀라운 미남자 세바스찬은 어쩐지 조금 론을 닮았다. 줄리아 배역이 아름다우시다. (원작에서도 세바스찬과 닮았다고 나오니 이쪽이 더 적절해보인다.) 호흡이 차분하지만 적절하다.


영화는, 뭐 드라마보다 좀 더 세련된 아름다움은 있지만, 그런 만큼 작품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귀족적이고 고전적인 분위기는 덜하다. 줄리아를 제외하고 캐스팅은 훌륭하며 눈이 훈훈해지는 좋은 장점이 있다. 매튜 굿과 벤 위쇼가 나옴. 나도 위쇼 필모 훑다가 이 작품을 만났으니 고마워해야 하는건가. 원작을 매우 난도질 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영화의 캐릭터들도 나름의 매력은 있지만, 역시 끝맺음이 허술하고 주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물론 주관적인 해석이다.) 서정적인 영상과 음악은 매우 훌륭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지막 부분 때문에 앞으로 다시 찾게 될 듯. 은 무슨 고상하게 써놨지만 망상 떄문에 자꾸 보고 또 볼거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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